지난 3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인이 등장하는 연극은 장애인들이 ‘좋은 일, 하고싶은 일’에 불과하다고 장애연극을 공식적 자리에서 규정한 서울연극협회를 규탄하는 시위가 진행되었다. 현재 1인 시위로 이어지고 있는 이번 사태는 서울연극협회가 장애인 연극인과 함께하는 연극 연출가 J씨의 정회원 등록을 거부한 것으로 시작해 장애예술은 비전문적이라고 폄하한 것도 모자라 장애예술을 하는 장애인 배우들을 연극계에서 배제한 명백한 차별행위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번 사태는 장애인이 참여하는 예술공연과 장애 예술인을 배제한 차별적 사건이며 서울연극협회가 장애예술의 예술적 가능성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우리는 이를 서울연극협회의 뒤떨어져 있는 차별적인 장애인권감수성과 함께 서울연극협회가 가진 정상성에 기반한 구태의연(舊態依然) 자체의 미학담론 또한 비판해야 한다.
더 정확히 짚으면 협회의 정회원 자격 최종 심사를 한 심사위원들의 장애인 배우가 참여한 공연을 “전문 연극이 아니다”라고하는 판단은 신체를 기준으로 예술의 자격을 가르는 왜곡되고 황당한 판단이다(실제 협회에 “전문 연극인”이라는 용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협회가 문제 삼은 지점은 작품의 완성도가 아니라 누가 무대에 서 있는가였다. 장애인 배우가 연기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연 전체의 전문성을 부정한 것은 예술적 판단이라기보타 특정한 신체를 기준으로 한 배제의 작동으로 봐야한다.
서울연극협회는 장애인 예술가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버렸다. 서울연극협회는 예술적 판단이 아닌 장애예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정상성에 대한 신화를 아직도 주류 예술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타자를 하나의 고정된 대상으로 환원하는 시선과 맞닿아 있다. 타인을 규정하고 고정시키는 순간 우리는 그 존재를 자유로운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만들게 된다.
장애인 배우의 참여만으로 공연의 전문성을 운운한 이번 서울연극협회의 행태는 예술적 기준을 스스로 제한하고, 예술에까지 정상성을 강요하여 그것을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 것은 예술이 가지는 자유와 확장의 영역을 경계와 배제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장애예술은 함량이 미달된 예술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를 가진 몸은 기존의 미학이 담고 있는 균형과 조화라는 정상성의 기준을 흔들고 해체하며 새로운 감각과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왔다. 장애예술은 예술의 외부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부단한 실천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서울연극협회가 가진 예술적 감각이 보수적이라는 것과 내부에도 팽배한 폐쇄적인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예술을 했다는 이유로 정회원 자격을 갖지 못한 이 사건에서 서울연극협회는 예술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예술에서 어떤 몸만이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제한해 버리며 서울연극협회의 예술적 보수성을 드러낸 것은, 단언컨대 예술가의 태도가 아닌 권력자의 폭력이다.
이 사건으로 계기로 이제 연극계를 넘어 범예술계에서 서울연극협회의 장애예술을 바라보는 보수성에 경종을 울리며 질타를 가해야 할 것이다.
2026. 4. 6
정지영 - 장애문화예술작가포럼 회원
지난 3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인이 등장하는 연극은 장애인들이 ‘좋은 일, 하고싶은 일’에 불과하다고 장애연극을 공식적 자리에서 규정한 서울연극협회를 규탄하는 시위가 진행되었다. 현재 1인 시위로 이어지고 있는 이번 사태는 서울연극협회가 장애인 연극인과 함께하는 연극 연출가 J씨의 정회원 등록을 거부한 것으로 시작해 장애예술은 비전문적이라고 폄하한 것도 모자라 장애예술을 하는 장애인 배우들을 연극계에서 배제한 명백한 차별행위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번 사태는 장애인이 참여하는 예술공연과 장애 예술인을 배제한 차별적 사건이며 서울연극협회가 장애예술의 예술적 가능성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우리는 이를 서울연극협회의 뒤떨어져 있는 차별적인 장애인권감수성과 함께 서울연극협회가 가진 정상성에 기반한 구태의연(舊態依然) 자체의 미학담론 또한 비판해야 한다.
더 정확히 짚으면 협회의 정회원 자격 최종 심사를 한 심사위원들의 장애인 배우가 참여한 공연을 “전문 연극이 아니다”라고하는 판단은 신체를 기준으로 예술의 자격을 가르는 왜곡되고 황당한 판단이다(실제 협회에 “전문 연극인”이라는 용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협회가 문제 삼은 지점은 작품의 완성도가 아니라 누가 무대에 서 있는가였다. 장애인 배우가 연기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연 전체의 전문성을 부정한 것은 예술적 판단이라기보타 특정한 신체를 기준으로 한 배제의 작동으로 봐야한다.
서울연극협회는 장애인 예술가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버렸다. 서울연극협회는 예술적 판단이 아닌 장애예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정상성에 대한 신화를 아직도 주류 예술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타자를 하나의 고정된 대상으로 환원하는 시선과 맞닿아 있다. 타인을 규정하고 고정시키는 순간 우리는 그 존재를 자유로운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만들게 된다.
장애인 배우의 참여만으로 공연의 전문성을 운운한 이번 서울연극협회의 행태는 예술적 기준을 스스로 제한하고, 예술에까지 정상성을 강요하여 그것을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 것은 예술이 가지는 자유와 확장의 영역을 경계와 배제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장애예술은 함량이 미달된 예술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를 가진 몸은 기존의 미학이 담고 있는 균형과 조화라는 정상성의 기준을 흔들고 해체하며 새로운 감각과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왔다. 장애예술은 예술의 외부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부단한 실천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서울연극협회가 가진 예술적 감각이 보수적이라는 것과 내부에도 팽배한 폐쇄적인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예술을 했다는 이유로 정회원 자격을 갖지 못한 이 사건에서 서울연극협회는 예술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예술에서 어떤 몸만이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제한해 버리며 서울연극협회의 예술적 보수성을 드러낸 것은, 단언컨대 예술가의 태도가 아닌 권력자의 폭력이다.
이 사건으로 계기로 이제 연극계를 넘어 범예술계에서 서울연극협회의 장애예술을 바라보는 보수성에 경종을 울리며 질타를 가해야 할 것이다.
2026. 4. 6
정지영 - 장애문화예술작가포럼 회원